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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전쟁 10년, 귀향 여정 10년. 오디세우스는 무려 20년을 집 밖에서 보냈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신작 『오디세이』 개봉 소식을 접하고 원작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를 다시 들여다봤는데, 솔직히 이건 예상 밖이었습니다. 괴물과 신이 등장하는 모험 서사인 줄 알았는데, 결국 '집으로 돌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묻는 이야기였습니다.



트로이 전쟁, 오디세우스를 집에서 내몬 사건

『오디세이아』를 제대로 이해하려면 트로이 전쟁이 왜 일어났는지부터 따라가야 합니다. 발단은 그리스 최고의 미녀 헬레네를 둘러싼 구혼 경쟁이었습니다. 수많은 영웅이 헬레네에게 몰려들면서 헬레네의 아버지 틴다레우스는 심각한 고민에 빠졌습니다. 누군가를 선택하면 나머지 모두가 등을 돌릴 것이 뻔했으니까요.

이때 오디세우스가 묘안을 제시합니다. 이른바 '틴다레우스의 맹세'입니다. 여기서 틴다레우스의 맹세란, 헬레네의 남편이 누가 되든 모든 구혼자가 그 선택을 인정하고 부부를 위협하는 자가 있으면 함께 싸우겠다고 선서하는 약속입니다. 제가 직접 이 대목을 읽으면서 오디세우스가 얼마나 현실적인 인물인지 새삼 놀랐습니다. 전쟁을 막으려는 지혜였지만, 훗날 이 맹세가 그 자신을 전쟁터로 끌어들이는 올가미가 됩니다.

헬레네는 결국 스파르타의 왕 메넬라오스와 결혼하지만, 트로이의 왕자 파리스가 아프로디테 여신의 도움을 등에 업고 헬레네를 트로이로 데려가면서 전쟁의 불씨가 당겨집니다. 메넬라오스는 곧바로 틴다레우스의 맹세를 발동시켜 그리스 전역의 영웅들을 전쟁에 끌어모았습니다. 오디세우스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처음에는 미친 척을 하며 참전을 피하려 했지만, 어린 아들 텔레마코스를 이용한 계략에 들통나면서 결국 전쟁에 나서게 됩니다.

트로이 전쟁은 그렇게 10년을 끌었고, 오디세우스 자신이 고안한 '트로이의 목마' 계략으로 마침내 막을 내렸습니다. 트로이의 목마란 거대한 목제 말 구조물 안에 병사를 숨겨 적진 내부로 들여보내는 전술로, 트로이인들이 전리품으로 착각해 성 안에 끌어들이면서 하룻밤 만에 도시가 함락됩니다. 영리함으로 전쟁을 끝낸 오디세우스였지만, 그 승리가 곧바로 집으로 이어지지는 않았습니다.

  • 틴다레우스의 맹세 → 헬레네 납치 → 트로이 전쟁 발발로 이어지는 인과 구조
  • 오디세우스는 참전을 피하려 했으나 자신이 만든 맹세에 발목 잡힘
  • 트로이의 목마 계략으로 전쟁 종결 — 지혜가 영웅을 만든 동시에 신의 분노를 샀음
요약: 오디세우스의 비극은 자신이 만든 맹세와 자신이 세운 계략, 즉 지혜의 두 얼굴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귀향 여정, 노력만으로는 부족했던 20년

전쟁이 끝난 뒤 오디세우스의 귀향 여정이 시작됩니다. 그런데 이게 생각보다 훨씬 가혹합니다. 키코네스족의 땅에서 부하들의 약탈이 화를 불렀고, 연꽃을 먹은 부하들은 고향 기억 자체를 잃어버렸습니다. 제가 이 대목에서 가장 서늘했던 건, 아무것도 기억하지 못하면 돌아갈 이유도 사라진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가장 유명한 에피소드는 키클롭스 폴리페모스와의 대결입니다. 키클롭스란 눈이 하나뿐인 거인족으로, 호메로스의 서사시에서 문명 밖의 야만을 상징하는 존재입니다.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에게 자신의 이름을 '노바디(아무도 아님)'라고 속인 뒤 포도주로 취하게 만들어 눈을 찌르고 탈출합니다. 여기까지는 완벽했습니다. 문제는 그다음이었습니다. 섬을 떠나면서 오디세우스는 자신의 진짜 이름을 큰 소리로 외쳤습니다. 제 경험상 이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심리입니다. 힘든 상황을 지혜로 헤쳐 나왔을 때 그 성취감을 누군가에게, 심지어 상대방에게라도 인정받고 싶어지는 마음 말입니다. 하지만 그 순간의 자만심이 포세이돈의 저주를 불렀고, 이후 여정 전체를 뒤흔들었습니다. 『오디세이아』에서 이 장면이 단순한 실수 이상으로 읽히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지혜로운 자도 자만심에서는 자유롭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이기 때문입니다(출처: Encyclopaedia Britannica — Odyssey).

이후 여정도 좀처럼 나아지지 않습니다. 바람의 신 아이올로스에게 받은 가죽 자루 안에는 폭풍을 일으키는 바람이 담겨 있었습니다. 고향 이타카가 눈앞에 보일 즈음 부하들이 호기심에 자루를 열었고, 배는 순식간에 먼바다로 다시 떠밀렸습니다. 저도 무언가를 거의 다 이루었다고 생각한 순간에 예상치 못한 변수가 터져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때의 허탈함이 정확히 이 장면에 겹쳐 보였습니다. 인생에서 노력만으로 해결되지 않는 일이 있다는 게, 신화 속 이야기지만 전혀 낯설지 않았습니다.

마녀 키르케는 부하들을 돼지로 변신시켰고, 오디세우스는 헤르메스가 건네준 신비한 약초 '몰리'의 힘으로 마법을 무력화하고 부하들을 되찾습니다. 그러나 키르케의 매력에 빠져 1년을 섬에서 보냈습니다. 세이렌의 유혹, 스킬라와 카립디스의 해협, 태양신 헬리오스의 금기를 어긴 부하들까지 — 결국 오디세우스 혼자만 살아남아 칼립소 여신의 섬에 닿습니다. 칼립소는 불멸의 삶을 약속하며 그를 붙잡아 두었지만, 오디세우스는 7년이 지나도록 페넬로페를 그리워했습니다. 편안함이 아니라 사랑하는 사람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의지는, 어떤 유혹보다 강했습니다.

요약: 귀향 여정은 자만심·유혹·운명이 겹친 시험이었으며, 오디세우스는 모든 부하를 잃고서야 간신히 집을 향할 수 있었습니다.

 

페넬로페, 기다림도 하나의 서사였다

오디세우스가 바다를 떠도는 동안 이타카에서는 또 다른 전쟁이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100명이 넘는 구혼자들이 궁전을 점령하고 재산을 탕진하며 페넬로페에게 재혼을 압박했습니다. 페넬로페는 남편을 위한 수의를 다 짤 때까지 기다려달라고 말한 뒤, 낮에 짠 것을 밤마다 풀어내는 방식으로 3년을 버텼습니다. 이 '페넬로페의 베 짜기'는 단순한 시간 벌기가 아니라 적대적인 환경 속에서 스스로 상황을 통제하려 한 지혜의 행위입니다. 여기서 페넬로페의 베짜기란, 완성되지 않는 천을 빌미로 결혼을 미루는 소극적 저항 전술을 뜻합니다(출처: World History Encyclopedia — Penelope).

제가 직접 이 이야기를 다시 읽으면서 느낀 건, 페넬로페가 단순히 기다리는 인물이 아니라는 점이었습니다. 오디세우스의 모험이 외부 세계와의 싸움이었다면, 페넬로페의 싸움은 내부, 즉 궁전 안에서 자신의 자리를 지키는 싸움이었습니다. 오디세우스의 화려한 여정에만 집중하다 보면 이 무게를 놓치기 쉬운데, 저는 오히려 이 부분이 더 현실적으로 다가왔습니다. 누군가를 기다린다는 일은 생각보다 능동적인 행위입니다.

오디세우스는 귀환 후 거지로 변장한 채 궁전에 잠입합니다. 페넬로페는 남편의 활로 12개의 도끼 구멍을 한 번에 꿰뚫는 사람과 결혼하겠다는 시험을 내걸었고, 구혼자들이 모두 실패한 자리에서 거지로 변장한 오디세우스가 단번에 성공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진 복수는 철저했습니다. 하지만 제 경우엔 이 장면을 마냥 통쾌하게만 읽기가 어려웠습니다. 구혼자 수백 명을 한꺼번에 처단하는 방식은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폭력에 의한 문제 해결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이야기 안에서 정의가 회복되는 순간이지만, 그 방법에 대해서는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고 느꼈습니다.

마지막 장면이 인상적입니다. 페넬로페는 남편이 나타나도 쉽게 믿지 않았습니다. 그녀는 침대를 옮겨달라는 말로 오디세우스를 시험했고, 그가 살아있는 올리브 나무를 기둥으로 삼아 만든 침대라 절대 옮길 수 없다고 답했을 때 비로소 확신했습니다. 이 비밀을 아는 사람은 오직 두 사람뿐이었습니다. 20년의 세월을 건너 두 사람을 연결한 것은 기적이 아니라 오직 둘만 아는 아주 사소하고 구체적인 기억이었습니다.

요약: 페넬로페의 인내와 지혜는 오디세우스의 모험과 동등한 무게를 가진 또 하나의 서사이며, 귀환의 완성은 두 사람의 공동 기억에서 이루어집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 『오디세이』는 원작 『오디세이아』를 그대로 따라가나요?

A. 원작 『오디세이아』는 귀향 여정과 이타카 복수까지 방대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영화가 어느 부분에 집중할지는 아직 공개된 정보가 많지 않지만, 놀란 감독 특유의 비선형 서사 방식으로 재구성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입니다. 원작의 흐름을 미리 파악해 두면 영화를 감상할 때 훨씬 풍부하게 읽힐 것입니다.

 

Q. 오디세우스가 포세이돈의 저주를 받게 된 진짜 이유가 뭔가요?

A. 키클롭스 폴리페모스는 바다의 신 포세이돈의 아들이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그의 눈을 찌르고 탈출에는 성공했지만, 섬을 떠나면서 자신의 실명(實名)을 자랑스럽게 외쳤습니다. 이 자만심이 폴리페모스에게 복수 대상을 알려준 셈이 되었고, 폴리페모스는 아버지 포세이돈에게 오디세우스의 귀환을 방해해달라고 기도했습니다. 지혜로운 선택 직후에 찾아온 자만심이 결국 가장 큰 장애물이 된 것입니다.

 

Q. 페넬로페의 베짜기가 왜 중요한 장치인가요?

A. 페넬로페는 수의를 다 짤 때까지 재혼을 미루겠다고 구혼자들에게 약속한 뒤, 낮에 짠 것을 밤마다 풀어 3년을 버텼습니다. 단순한 시간 끌기가 아니라 적대적인 환경에서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유일한 수단을 최대한 활용한 전략입니다. 오디세우스의 모험에 가려지기 쉽지만, 페넬로페의 베짜기는 『오디세이아』 전체 서사를 지탱하는 핵심 축 중 하나입니다.

 

Q. 칼립소가 오디세우스에게 불멸을 제안했는데, 왜 거절했나요?

A. 칼립소는 오디세우스에게 영원히 함께 살면 불사의 삶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하지만 오디세우스는 7년간 매일 해변에서 이타카 방향을 바라보며 울었다고 전해집니다. 편안함과 영원한 삶보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는 필멸의 일상을 선택한 것입니다. 결국 아테나의 간청으로 제우스가 헤르메스를 보내 칼립소에게 그를 풀어주도록 명했고, 오디세우스는 뗏목을 만들어 귀향길에 올랐습니다.

 

결론

『오디세이아』를 다시 들여다보면서 든 생각은, 이 이야기가 영웅의 무용담이라기보다 '돌아간다는 것의 의미'를 집요하게 파고드는 서사라는 점이었습니다. 오디세우스는 전쟁에서 이겼고, 괴물을 물리쳤고, 신의 유혹도 버텼습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모든 부하를 잃었고, 자신의 자만심이 만든 저주를 평생 짊어졌습니다. 이 이야기를 무조건 영웅의 승리로만 읽는 시각도 있는데, 저는 오히려 그 안에 담긴 실패와 상실의 무게가 더 진하게 남았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 원작을 어떻게 풀어낼지 궁금합니다. 오디세우스의 모험과 함께 페넬로페와 텔레마코스가 이타카에서 견뎌낸 시간까지 충분히 담아낸다면, 단순한 스펙터클을 넘어 진짜 감동이 있는 영화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를 보기 전에 원작의 흐름을 한 번 훑어보는 것, 적극 추천합니다.

참고: https://www.youtube.com/watch?v=_Erxo838sgU